원불교교사(圓佛敎敎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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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교사(圓佛敎敎史)

제2편 회상(會上)의 창립(創立)

제4장 끼쳐주신 법등(法燈)

1. 시국의 긴박과 계획의 보류

원기 25년(1940·庚辰) 4월로 새 회상은 창립 제 1대 제 3회를 맞았으나, 때는 이미 중일 전쟁이 고비에 올라, 일경의 주목과 간섭은 날로 심하고, 대종사 또한 스스로 오래 머무르시기 어려움을 짐작하시어, 그 동안 뜻해 오신 몇 가지 계획 사업을 추진 해 보시었으나, 일정의 방해로 다 좌절되는 가운데, 갈수록 조심스러운 나날을 지내시게 되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일정 당국은 우리의 예회 순서에 이른바 국민 의례를 강제 편입시키고, 모든 의식 수입은 국방 헌금하도록 강요하였으며, 형사를 파견하여 대종사와 교단을 감시하고, 가지 가지 구실로 여러 차례 간부를 구속하였으며, 그 동안 써 내려 온 회상의 시창 연호 사용을 금지하고, 회보 발행의 중지를 불가피하게 하였으며, 26년(1941·辛巳) 12월에 소위 대동아 전쟁이 일어나자, 이듬 해 3월에는 임시 보안령이라는 것을 발표하여 결사 존속계(結社存續屆)를 제출케 한 후 교당의 신설에 은연 중 제약을 가하고, 불교 연맹이라는 일인 승려 주동 단체에 참가시켜 시국 행사에 자주 동원케 하였으며, 동하 선기와 예회 횟수를 감축시켜 일어 보급과 근로 작업에 동원시키고, 더러는 교당을 그들의 소위 연성 도장(鍊成道場)으로 임의 사용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대종사께서는 의연(毅然)하신 태도로 그들을 대처하시고 소극적인 협력으로 그들을 무마하시다가, 25년(1940·庚辰) 1월에는 교역자 양성 전수 학원으로 유일 학원 설립의 청원서를 제출하였으나, 시일만 천연하다가 이듬해에 좌절되었고, 27년(1942·壬午) 4월에는 탁아소 겸 보육원으로 자육원(慈育園) 설립을 청원하였으나, 그것도 좌절되었으며, 이미 설립된 산업 기관들도 시국이 날로 긴박해 짐을 따라 거의가 답보 또는 중단 상태를 면치 못하였다.
당시 일정 당국은 친일적 단체를 제외하고는 대소를 막론하고 한인 단체의 존립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일본이 본시 불교국이라 불법을 두대하는 회상을 공공연히 탄압하지는 못하고, 사전 검열 사후 보고라는 엄격한 규제 밑에 새 회상의 일동 일정을 샅샅이 감시 제약하였다. 이에, 대종사께서는 모든 신규 계획 사업을 다 보류하시고, 그 동안 몇 몇 중진 제자(宋道性등)의 개인 명의로 등기되어 있던 교산들을 27년(1942·壬午) 5월에 공증 증명케 하시었으며, 그 해 10월 부터는 강연히 기회를 지어 각지 교당을 최후로 순회하시어, 교도들의 신성과 결속을 다져 주시었다.